
오피니언 시론 인문사회과학 없이는 ‘AI 강국’도 없다 강성호 (사)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이사장 지난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키디데스 함정’을 넘어선 협력을 제안한 것은,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넘어 마침내 미국과 대등한 반열에 올랐음을 대내외에 선언한 장면이었다. 이러한 급부상의 배경에는 세계를 뒤흔든 ‘딥시크(DeepSeek)’를 비롯한 중국형 소버린 인공지능(AI)의 도약과 이를 뒷받침한 정부의 파격적인 전략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한국도 반도체와 서버, 개발자 수만으로는 한국형 AI를 만들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언어와 역사, 제도와 상식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 기반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AI 시대일수록 인문사회과학은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있어야 한다. AI 경쟁이 격화할수록 각국은 기술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 체계까지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전쟁과 공급망 위기, 기술 패권 경쟁은 이제 누가 더 빠른 기술을 갖느냐를 넘어, 누구의 기준과 가치로 세계를 해석하느냐를 겨루는 단계로 들어섰다.이런 시대에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AI를 갖추려면 공학적 성능 못지않게 한국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의 두께를 키워야 한다. 한국인의 삶과 갈등, 제도와 역사적 기억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한국형 AI라 부를 수 있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2026년 전체 연구·개발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0.93%까지 떨어졌다. 국가 연구·개발 35조3000억원에서 인문사회 연구에 쓰이는 비용은 1%도 안 되는 3286억원에 불과하다. 이번에 양산이 시작된 KF-21 3대 값도 되지 않는다. AI 시대를 국가적 과제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AI가 학습해야 할 언어와 역사, 사회와 제도 연구에는 유난히 인색한 셈이다. 엔진의 출력은 높이면서 방향키는 떼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이것은 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 소멸, 혐오와 양극화,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역사 인식의 혼란 같은 문제들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데이터는 현상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어떤 해법이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더 많은 시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학문이 맡아야 한다. 사회적 합의의 언어를 만들고, 공동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의 범위를 가늠하는 힘 역시 여기서 나온다.국제 비교는 더 뼈아프다. 주요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비중으로 인문사회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전체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인문사회 분야 비중은 프랑스 18.6%, 일본 13.1%, 미국 11.2%, 독일 8.3%, 영국 5.1%에 이른다. 기술 선진국을 꿈꾸면서도 정작 기술의 방향과 기준을 묻는 학문에는 푼돈만 쓰는 나라라면, 빠를 수는 있어도 결코 단단할 수는 없다.연구 여건 역시 초라하다. 인문사회 분야는 과제 수혜율이 낮고 장기 연구를 지속할 기반도 취약하다. 역사와 철학, 정치와 사회에 대한 연구는 본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짧은 기간 안에 눈에 띄는 성과만 요구한다면 깊이 있는 축적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축적된 해석과 비판, 번역과 저술, 그리고 후속 세대 양성 없이 사회의 사고력은 두꺼워질 수 없다.AI는 강력한 엔진일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향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엔진이 아니라 사람이다. 혐오를 어디에서 멈출지, 역사 왜곡을 어떻게 걸러낼지, 공동체의 이익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는 모두 알고리즘 바깥의 문제다. 기술이 엔진이라면 인문사회과학은 방향키다. 방향키 없는 고속 질주는 발전이 아니라 위험일 뿐이다.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재정과 제도의 전환이다. 인문사회 연구 예산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개인 연구와 공동 연구, 번역과 출판, 학술단체와 한국학, 신진 연구자와 연구소 생태계까지 함께 키워야 한다. 작은 연구소와 중간 규모 연구소, 장기적 연구가 버틸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비로소 지식도 자랄 수 있다.AI 강국을 원한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단지 더 빠른 AI를 만들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AI를 갖고 싶은 것인가.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투자는 과거를 위한 장식이 아니다.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방향이다. 국가의 품격 역시 결국 이런 선택에서 드러난다. 이제 인문사회과학을 예산의 변두리에서 끌어내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할 때다. 강성호 (사)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이사장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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