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야.” “다 놔 버리고 싶다.” 소셜미디어 엑스(X)에 ‘자해’를 검색하자 손목이나 몸에 상처를 입힌 사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쫄보자해’, ‘자해계(정)’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다. 자해 당시의 우울감이나 충동이 글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를 재게시한 이용자들은 “힘내라”, “나도 했다”라며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자해 사진은 청소년의 자해 위험을 키우는 핵심 매개다. 게시물을 올린 청소년에게 심리적 보상을 안기고 우울감을 느끼는 다른 청소년을 자극한다. 이런 게시물의 게재·확산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달 초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는 자해 사진을 접속 차단할 기준과 방법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평소 방미심위는 소셜미디어의 자해 사진을 차단해 달라는 안건이 접수되면 그때그때 수위를 보고 결정을 내린다. 지난 7일 통신심의소위원회 안건으로 올라온 엑스의 자해흔 게시물 21건에 대해서 사무처는 차단하지 말자는 의견을 냈다. 그중 한 사진에 대해선 “다른 ‘잔혹·혐오’ 정보를 보면 살이 벌어져 진피층이 세부적으로 보이는 등 손상된 신체 부위 이미지가 유통되는데 이 건들은 표현 수위가 낮거나 일부 상처와 혈흔 등이 보이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방미심위 위원들은 심의할 때 사무처의 의견을 먼저 들은 뒤 토론을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린다. 소위 위원들 의견은 엇갈렸다. 최선영 위원은 자해 수위와 무관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흔적이 굉장히 다발성으로 있었던 사진이라 충분히 자해 흔적으로 볼 수 있”고 “어느 부모도 이걸 아이한테 ‘표현의 자유야’라고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자해 사진이) 자살이나 자해 방법의 접근성을 굉장히 높일 수 있고 반복 노출을 극대화해 전염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짚었다. 반면 김민정 위원은 “건강한 방법은 아니지만 청소년에게 유일한 분출구인데 계속 삭제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까 생각이 든다”며 “위기의 징후로 보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위원회는 표결 끝에 찬성 4, 반대 1로 해당 사진들의 접속을 차단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모두 자해 정보를 다룰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자해 충동을 가진 청소년에게 소셜미디어는 심리적 위로감을 주지만 자해를 반복하게 하는 수렁이기도 하다. “고통의 시각화라고 할까요? 언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 마음을 자해로 표현하는 거죠. 그 사진에 ‘좋아요’나 댓글이 달리면 관심을 받으니까 반복하게 되고요. 그러면서 또래끼리 모방을 하거나 자해 수위를 더 올리려는 경쟁 심리가 생기죠. 점점 더 자해의 고통에 둔감해지는 거예요.” 청소년 자해·자살 연구에 천착해온 안운경 단국대 연구교수(심리학과)가 말했다. 이 때문에 접속 차단과 위기 청소년 지원이 같이 가야 한다고 안 교수는 본다. “접속 차단만 하면 청소년들이 더 폐쇄적인 플랫폼으로 이동할 위험이 크다. 게시물을 차단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링크나 이미지를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 추천 기능을 적극 규율할 필요가 있다. 조회 수가 높은 게시물이 또래 집단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 관계 안에서 더 쉽게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소셜미디어의 자해 관련 알고리즘을 확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자해 수위에 따라 차단을 달리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경미한 자해흔도 소셜미디어에 올려 자극을 받으면 더 심각한 자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안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자해 사진은 수위와 무관하게 위험하다’는 보도 지침을 지난 2023년 냈다. 같은 해 발표된 연구에서도 ‘소셜미디어 자해 사진 게재는 자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선 자해나 자살을 부추기는 정보의 플랫폼 유통을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자안전위원회(eSafety Commissioner)는 지난 3월 고강도 폭력, 자해, 자살 관련 게시물을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하고 플랫폼 서비스가 이를 증폭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플랫폼 기업은 자사 서비스에 이런 정보가 유통되는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제거하며 아동 노출을 최소화하도록 알고리즘을 개선해야 한다. 영국도 지난 2024년 온라인 안전법에 ‘중대한 자해를 조장 또는 방조하는 콘텐츠’를 불법 유해 정보로 정했다. 마찬가지로 플랫폼 기업이 불법 정보를 수시로 탐색·제거하고 이용자 신고도 받아야 한다. 반면 한국에선 자해 정보가 불법 정보(유통 금지 정보)가 아니다. 성평등가족부는 “연령에 따라 금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건복지부는 “직접적인 자살 조장 문구가 없다”는 이유로 각각 청소년 유해 매체물과 자살 유발 정보에서 제외했다. 자해가 주로 청소년에게서 관찰되는 현상이고 반복하면 성인 자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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