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 권오갑 에이치디(HD)현대 명예회장의 또 다른 직함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다. 1978년 현대중공업 사원으로 입사해 2021년 한국경영학회 명예의 전당 전문경영인 1호로 헌액되는 등 ‘대가’로 인정받았지만, 2002 한일월드컵 유치 실무에서부터 프로축구단 단장·구단주·연맹 총재를 맡는 등 37년간 한국 축구사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긴 ‘찐 축구인’이다. 프로축구 케이(K)리그가 1~2부 기본 체제를 갖춘 것은 내셔널리그(실업리그)가 2부로 재편되면서 가능했는데, 당시 실업축구연맹 회장으로 산파 역을 맡은 이가 그다. 2013년 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취임한 이래 허수 관중 철폐, 객단가 산정, 연봉 공개 등 투명 경영은 “바닥까지 친다”는 철저한 반성에서 나왔고, 지금은 3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프로축구연맹 총재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무실 칸막이를 없애는 일이었다. 테이블과 좌석만 갖다 놓고, 선택해서 앉으면 되는 공간 구상은 낯선 것이었지만 업무 효율과 수평적 소통의 중요성을 알리는 메시지로는 충분했다. 총재실을 회의실(직원들이 집현전으로 명명했다)로 개조하고, 교육지원팀을 신설해 구단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축구 산업·마케팅·홍보 강좌를 연 것은 발전 방향을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일은 혼자 할 수 없다”고 믿는 그가 경기 성남 판교 에이치디현대 신사옥에 새벽부터 출근해 식판을 들고 직원들과 함께 밥 먹고, 누구에게라도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언행일치라는 경영 철학에서 나온다. 나서기 싫어하는 그가 “10년 된 약속”을 지킨다며, 프로축구연맹 총재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18일 한겨레와 인터뷰했다. ―13년간 케이리그 총재로 재임하면서 가장 뜻깊은 일은 무엇으로 보는가? “가장 도전적인 과제였던 케이리그 1~2부 승강제 정착,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비디오판독 시스템 1~2부 도입, 표준화된 데이터 생성과 보급 등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 작업이었지만, 공정성과 팬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무료 표를 근절하고 ‘유료 관중’ 개념을 정착시키면서 케이리그를 소비하는 팬층의 연고 팀 충성도가 강화됐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중이 늘었다. 케이리그를 가치 있는 콘텐츠로 인정하는 팬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징표들인데, 이런 것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지게 된다. 일단 3년 연속 300만 관중이 들어왔고, 케이리그 1~2부 구단이 29개까지 늘어난 것은 구체적인 성과다.” ―외부자 시선에서 볼 때 각 구단 임직원을 대상으로 축구산업 아카데미 강좌를 연중 실시했던 것이 가장 눈에 띈다. “기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공정성과 일관된 원칙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단합하고, 방향을 공유해야 한다. 또 이를 잘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연맹에 처음 부임했을 때 행정 역량과 전문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고, 강사진도 꽤 많이 초청해 구단 운영자들이 재정·홍보·운영 등 실무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했다. 이것이 케이리그를 산업의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초가 됐다. 이런 것이 바탕이 돼 2019년 케이리그2 중계방송을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고, 2021년부터는 직영 방송사를 설립했다. 2019년 말부터 유럽 중계권 업체와 함께 해외 중계권 판매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연맹 직원들은 새로운 변화에 힘들었겠지만, 최종 소비자인 팬들은 수혜를 누리는 것 같다. “2013년 당시 상근 직원 16명이 전부였던 연맹은 현재 3본부 12팀 체제에서 50명 가까이 근무하고, 예산도 2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었다. 단순히 숫자가 바뀐 것이 아니라 구조의 질적인 변화도 함께 이뤄졌다.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인력이 충원됐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역량과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들이 지속해서 합류했다. 일부는 해외 구단 및 기관에 보내 경험을 축적하도록 하고 있다. 1990년대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유치했을 때, 축구 행정 전문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현대중공업 최고의 자원 15명을 축구협회에 파견해 행정력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외부의 도움 없이 연맹이 자체의 인적 역량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한다.” ―2010년 안팎으로 기억되는데, 수도권 경기장에서 관중을 직접 세어본 적이 있다. 1천명을 조금 넘는 것 같았는데, 경기 뒤 기록지에 6천여명으로 돼 있었다. 허수 관중을 실 관중으로 바꾸려고 할 때 반발이 있었을 텐데? “축구는 산업이고 경영인데, 경영의 기본은 투명성이다. 2018년 초청 손님까지 뺀 전면 유료 관중 집계를 시작했을 때 구단에서는 우려가 컸다. 관중 수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당장의 숫자보다 축구의 체질을 바꾸고 장기적인 신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단순히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단들이 사활을 걸고 유료 관중을 모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혁신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 용기와 리더십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본인만의 비결이 있나? “나는 옳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어려운 대상이라도 건의를 한다. 그래서 바꾼 것도 많다. 대한축구협회장한테도 제일 많이 고언했다. 기업이든 연맹이든 조직이 활력을 갖고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최고의 목표다. 인사도 사장급 정도에는 관여하고, 나머지는 다 맡긴다. 연맹도 지금까지 인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단, 좋은 사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뽑아달라고는 말했다.” “축구는 어려서도 했고, 해병대 장교 복무 때도 했지만, 2002 한일월드컵 유치전에 들어갔을 때부터 뒤에서 많은 지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런던 주재원 시절인 1987년도쯤이었는데 영국 축구의 성지라는 웸블리 경기장을 처음 가봤다. 가는 열차 안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부터, 경기장 안에서 숨죽이며 공을 쫓는 수만 시선의 출렁출렁함에 놀랐다. 축구는 여러 종목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에게도 강원도 강릉 주민들이 강릉농고와 강릉상고의 축구 대결이 벌어지면 남대천에 가마솥 걸어놓고 모두 축제 한마당에 빠졌던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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