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과 삶 ‘힙한 극우’는 어떻게 청년을 끌어들이나···‘스벅 사태’가 보여준 위험한 문화정치 백승찬 선임기자 기사 읽기 힙한 패션 속 암호화된 극우 코드순수 백인 강조한 비건 요리 프로불안·우울·고립 상태 청소년들문화 통해 서서히 극단주의 진입생활 현장 속 민주주의 강화해야 극우 성향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티셔츠. 좌표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성지와도 같은 베벨스부르크성의 위치를 뜻한다. 동아시아 제공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지음 | 조인석 옮김 | 동아시아 | 404쪽 | 2만원 스타벅스 경영진은 고의성을 부정한다지만, ‘탱크’ ‘5/18’ ‘책상에 탁’의 뉘앙스와 연상 작용을 몰랐다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무지, 무감각이 심각한 수준이다. 시민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극우들의 반응은 졸렬하다. 혼자서 공부하기도, 여럿이 대화하기도 좋았던 카페 브랜드가 순식간에 극우들의 놀이터가 됐다. 독재자가 머그잔을 든 합성사진, 브랜드 로고인 세이렌이 모는 탱크가 북한·중국 주민을 깔아뭉개는 만화가 인터넷을 떠돈다.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극단주의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가 도널드 트럼프 집권 1기였던 2020년 펴낸 (원제 ‘Hate In The Homeland’)는 극우가 더 이상 고립된 소수 집단이 아니라, 주류에서 당당하고 유쾌하게 활동한다고 본다. 이제 극우는 스킨헤드에 나치 깃발을 들거나 KKK단의 하얀 가운을 입지 않는다. 오늘 거리에서 만난 반듯한 인상의 젊은이가 극우 핵심 활동가일 수 있다.기존 극우 연구는 극우 집단의 논리를 분석하거나, 집단에 가입하는 개인의 심성을 살폈다. 저자는 극우 극단주의가 확산하는 ‘장소’와 ‘시기’를 본다. 이를 통해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극단주의에 어떻게 노출되는지를 다룬다.책에서 말하는 극우란 기본적으로 배타주의 집단이다. 주로 인종적 편견에 근거해 있으며, 디스토피아적 음모론을 펼친다. 이들은 때로 종말로 향하는 과정을 가속하기 위해 테러를 벌이기도 한다.평범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테러리스트가 되지는 않는다. 시작은 ‘증오를 파는 시장’이다. 백인 우월주의 블로거 앤드루 앵글린은 2017년 여름 미국 버니지아주 샬러츠빌 집회에서 추종자들에게 “힙하고 멋지게” 옷을 입으라고 권했다. 나치 깃발과 남부연합 깃발을 든 시위대는 흰색 폴로셔츠와 잘 다려진 카키색 바지를 입고 행진했다. 이른바 ‘민족주의 스트리트웨어’라 불리는 몇몇 브랜드는 고가의 후드 티셔츠에 암호화된 극우 상징과 메시지를 넣는다. 극우의 코드를 모르는 소비자라면, 그냥 옷이 멋있어서 입을 법하다. 한 극우 지향 브랜드의 어린이용 티셔츠. “백인 아기-우리 인종의 미래”라고 적혀 있다. 해당 브랜드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음식 역시 극우가 활동하는 주요 영역이 됐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모든 사람에게 비건을 강요하는 미친 짓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모두가 아침, 점심, 저녁 세끼마다 햄버거만 먹는 것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자, 극우 인사들은 “그들은 당신의 햄버거를 빼앗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반대로 건강·친환경 식품 문화와 극우 민족주의가 만나기도 한다. 음식은 국가 유산, 전통, 조국이라는 담론을 담는 그릇이며, 균형 잡힌 식단은 ‘순수 백인인종 가정’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극우 비건 요리 프로그램’의 등장은 그 사례다.극우에서 오랜 시간 신체 단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강인한 신체 단련을 요구하는 스포츠라 할 수 있는 종합격투기에 눈 돌린 것도 자연스럽다. 종합격투기가 하위문화에서 벗어나 주류 스포츠 콘텐츠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극우에 더욱 큰 기회가 됐다. 극우는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후원하거나 이곳에서 추종자를 모으고 훈련한다. 육체를 단련해 유사시에 대비하도록 함으로써, 종합격투기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이 되도록 꾸민다. 트럼프가 다음달 자신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백악관 잔디밭에 초대형 UFC 경기장을 지어 이벤트를 벌이려 한다는 최근의 뉴스는 이 책이 전하는 상황과 절묘하게 연결된다.그저 티셔츠, 음식, 스포츠일 뿐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지 모른다. 저자는 ‘나선형 참여’를 언급한다. 청소년이 극단주의의 핵심 이념을 갑자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현상에 참여하면서 서서히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21일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광화문점 앞에서 5공피해자단체연합회,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스타벅스 코리아의 5·18 민주화운동기념일 ‘탱크 데이’ 프로모션을 규탄하며 신세계 계열 상품 불매 상징의식에 참여하고 있다./김정근기자 어떻게 해야 할까. 규제와 법 중심의 접근법은 실행이 쉽고 효과도 좋아 보인다. 실제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 등 주류 플랫폼은 문제가 되는 증오발언, 소수자 위협, 백인 우월주의 음악 등을 차단하고 퇴출한다. 이러한 조치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극우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억압받는 피해자라는 서사를 공고히 했고, 규제 없는 지하 플랫폼으로 이동해 더욱 활발히 움직인다. 엄격한 법 집행도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법은 극단주의 활동이 이미 범죄의 단계로 진행된 다음에야 개입할 수 있다.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유쾌하게 소비되고,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이미지를 가지며, ‘힙’하기도 한 극우 콘텐츠의 주변부에 있는 청년을 범법자 취급하기는 어렵다.저자는 청년의 불안, 우울, 고립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권위에 반발하면서도 집단 소속감을 느끼려 하는 청소년기의 욕구는 극우 세력의 쉬운 목표가 된다. 특히 저자는 나치즘의 교훈을 얻은 독일 사례를 모범으로 제시한다. 독일은 “위험군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축구팀, 콘서트장, 종교 집단 등에서 극단주의 대응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학교·지역사회도 힘을 합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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