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적 유전자를 가진 건축을 역설해온 황두진 건축가가 최근 <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라는 새 책을 내놓았다. 현재 10만명 정도에 불과한 서울 사대문 안의 인구를 3배인 30만명까지 늘려보자는 파격적 제안을 담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의 사무실 겸 집 ‘목련원’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왜 서울의 많은 지역 가운데 사대문 안의 인구를 늘려야 하는지 황 건축가에게 물었다. 그는 “직주(직장-주거) 근접에 관심이 많은데, 사대문 안에 직장이 많고, 인구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종로구와 중구로 이뤄진 서울의 도심(CBD)은 기업과 노동자 수가 강남구와 함께 국내 최고지만, 인구 밀도는 서울의 25개 구 가운데 각각 24위, 25위다. 사대문 안의 직주 근접 인구를 늘리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개인에겐 워라밸(일-삶의 균형)을 높이고 사회적으론 친환경적입니다. 출퇴근에 탄소를 일으키는 교통수단을 적게 사용하니 탄소와 인프라, 혼잡, 매연 등을 모두 줄일 수 있죠.” 그의 책을 보면, 교통수단별 1인당·㎞당 탄소 배출량(g)은 보행과 자전거 0, 지하철 33.6, 버스 50.6, 승용차 147.5, 택시 155.7이다. 서울 사대문 안은 201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정된 ‘녹색교통진흥지역’이기도 하다. 황 건축가는 사대문 내 좋은 인프라도 ‘인구 증가’가 필요한 이유로 꼽았다. “사대문 안은 수백 년 동안 투자해온, 좋은 인프라가 있어요. 강남도 인프라가 좋지만, 그보다 더 균형 잡힌 인프라가 있습니다. 역사적 공간과 문화시설이 풍부하고, 길도 대로와 작은 도로, 골목길이 모두 연결돼 있다. 청계천과 같은 하천도 있죠.” 그는 사대문 안에 인구를 늘려야 하는 다른 이유로 ‘친구’(인간관계)를 들었다. “현재는 서울이 커져서 친구들이 대부분 먼 곳에 삽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죠. 그러나 같은 동네에 살면 밤 10시에도 ‘번개’를 할 수 있어요. 사대문 안의 직주 근접은 친구들을 늘릴 겁니다. 동네에 친구가 많은 것이 좋죠.” 황 건축가가 인구를 늘리자고 말한 지역은 통상 ‘도심’으로 불리는 종로구와 중구 전체가 아니라, ‘사대문 안’이다. 두 가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대문 안의 넓이는 16.7㎢, 인구는 10만명 안팎이지만, 종로구+중구의 넓이는 38.9㎢, 인구는 26만명이다. 해방 이후 종로구와 중구가 사대문을 넘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황 건축가가 종로구+중구가 아니라, 사대문 안을 제안한 이유는 뭘까? 그는 사대문 안이 ‘직관적’이라고 했다. 그는 “사대문 안은 내사산의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그 경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심상 지리”라고 설명했다. “서울은 세계적 도시이면서 역사 도시인데, 역사적 정체성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역사 도시 서울에선 일제가 만들고 해방 뒤 확장된 종로구·중구보다 사대문 안이 훨씬 더 중요하죠. 사대문 안을 통합해 ‘도성구’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조선 때 서울 사대문 안은 동-서-남-북-중부의 5부 체제를 갖고 있었고, 일본 강점기 때도 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1943년 일제는 사대문 안을 자신들이 많이 사는 중구와, 조선인이 많은 종로구로 나눴고 이것이 해방 뒤에도 이어졌다. 말하자면 종로구와 중구는 일제의 찌꺼기다. 그래서 오랫동안 역사학자나 언론인을 중심으로 사대문 안을 나눈 종로구와 중구를 통합해 ‘도성구’나 ‘한성구’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도 2023년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성동구 갑·을과 기형적으로 결합한 중구를 종로구와 통합해 하나의 선거구로 만들라고 권고했지만, 여야는 선거구 관리 편의 등의 이유로 이 방안을 거부했다. 정치인들의 사적 이익이 자연적·역사적 공간을 무너뜨린 것이다. 현재 10만명 정도에 불과한 사대문 안 인구를 30만명으로 늘리면 인프라가 감당할 수 있을까? 황 건축가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대문 안의 낮 유동 인구가 수십만~100만명에 이르는데, 이미 그것을 모두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거 인구가 늘어나면 출퇴근 인구가 줄어 교통 인프라 부담이 줄어들 겁니다.” 그는 특히 “사대문 안의 인구가 늘면 자동차 교통의 상당 부분이 자전거, 보행, 대중교통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집이다. 사대문 안의 인구를 대략 10만명으로 보면 주택 수는 4~5만채로 추정된다. 30만명이 살려면 8~10만채를 더 늘려야 한다. 황 건축가는 몇 가지 공급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도심의 주거는 외곽의 주거보다 규모가 작아도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심에선 카페나 식당, 도서관 같은 외부 공간을 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집 면적인 59~84㎡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또 그는 이번 책에서 ‘카멜레온 건축’이란 개념도 제시했다. 과거 한국의 집처럼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여러 행위를 함께 할 수 있는, 다용도의 열린 공간을 말한다. 둘째는 단지 아파트를 금지하고 주상복합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건축가는 “단지 아파트는 토지의 공공성이나 효율이 떨어지고 거리를 황폐하게 한다. 외곽에선 가능하지만, 도심에선 적합하지 않다. 거리를 따라 주거와 상업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뉴욕 맨해튼은 대부분의 건물이 주상 복합이다. 주상 복합에서 주거 비율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1~2층짜리 낮은 건물을 증축해서 주상 복합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앞선 책에서 저층은 상업·업무, 중·고층은 주거가 들어가는 ‘무지개떡 건축’을 제안했다. 황 건축가가 셋째로 제안한 주택 공급 방법은 사대문 안 기존의 상업·업무 건물 가운데 빈 부분을 주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검토하기도 했다. 생활이나 업무 방식의 변화로 도심의 상업·업무 공간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존 건물의 용도에 대해 더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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